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 김영건
지난 번 <당신에게 말을 건다> 속초 동아서점 이야기를 우연히 서가에서 찾아 읽고, 이 작가님의 매력에 빠졌다.
다시 읽은 두번째 책에는 작가님이 숨쉬고 있었다.
자기만의 템포로 자기의 언어로 말을 하는 작가님의 글에서 내공을 느꼈다.
이 책은 자신의 이야기와 서점운영을 하면서 생겼던 에피소드들, 책 이야기를 엮어 책을 추천하는 글들을 모아 쓴 책이다.
그래서 읽으며 또다른 읽고 싶은 책을 꼽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함께 읽은 책친구 A와 속초에서 만나는 것을 상상하며 읽으니 조금 더 행복한 마음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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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어떻게 과거로 갈 수 있었던 걸까.
서로 다른 시간으로 흐르는 평행 세계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으며 어떤 사정에 의해 두 세계는 편지라는 매개로 엮이게 된 것일까.
물리 법칙에 대한 참고 없이도,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고 나면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제각기 유영하는 평행우주라는 사실을. 타인에게로 나아가려는 마음이 이 우주를 저 우주로 가까스로 이어줄 수 있음을. p.48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딛고 서 있는지엔 별로 관심이 없다. 어딘가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다 보면 적어도 구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수평선이 얼마나 광활한지, 언덕이 얼마나 푸른지는 알아차린다. 하지만 발밑을 내려다보며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은 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야 한다. -정원가의 열두달, 카렐 차페크 p.153
유지원의 <글자 풍경>은 "왜 우리 눈앞의 글자들은 이 모습을 띠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대륙과 문명, 학문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스물일곱 개의 세상을 보여준다. 글자의 관점으로 편집된 이 풍경들의 마지막에서는 순우리말 '글'과 '그림'의 어원이 '그리움'의 어원과 닿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무언가를 긁고 새기는 행위가 글과그림의 기원이라면, 그런 흔적과 자국을 남기는 행위가 근본적인 차원에서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의 표현일 수도 있다는 견해다. p.68
자연을 보호하고 지구를 지켜내는 실천에 있어서, 중대한 결정의 순간 같은 건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지도 모른다. 자세히 바라보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 가늘고 촘촘한 순간만이 있는지도 모른다. 촌스러운 비닐봉투, 빛바랜 포스터, 테이프 자국이 남은 상자가 우릴 스쳐 지나가는 글너 순간들이. p.75
아이는 폭염에도 장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주 바다에 가길 원했다. 얕을 물에서 바위게, 소라, 성게를 찾았고, 부드러운 파도에 몸을 맡긴 채 다리를 저어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웠다. p.97
소설 속 '일시적인 문제'는 망가진 전선으로 인한 정전이라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ㅁ부부 사이에 일어난 어떤 감정의 균열을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할 테다. 부부싸움의 당사자는 왜 그 다툼이 일시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지 못할까. 지나가버릴 장대비라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 젖어버린 감정과 시시비비가 더 중요하다고 여겨서일까. 어떤 다툼이 있더라도 제일 먼저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과 그 책을 사간 손님의 흡족한 미소와 책상에 놓여있던 아내의 쪽지를 떠올린다면, 그저 일시적인 문제일 뿐인 부부 싸움도 슬기롭게 통과할 수 있을까. p.103. 줌파 라히리, <축복받은 집> 추천
"어찌 보면 세상 모든 일이 번역일지도 모르죠" -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무례함을 인지하는 것은 옷에 얼룩이 묻는 것과 같아서, 한번 묻고 나면 어지간해선 지워지지 않는다. 서점에서 일하는 동안 반복해 겪는 무례함의 얼룩이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 깊이 번져갔다. 지우지 못한 감정들은 차츰 마음의 크기를 넘어 밖으로 흘러넘쳤다. 말투가 필요 이상으로 건조해지기도 했고, 타인에 대해 까닭 모를 경계심으로 눈매가 서늘해지기도 했다. - p.116. <사람, 장소, 환대> 김형경 책 추천
위와 같은 증여로서의 환대와는 판이하게, <사람, 장소, 환대>는 환대를 뜻하는 영어 단어 hospitality의 또다른 의미인 '우호'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적대를 거두어들이고, 친구가 될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의미로서으 우호. 그 말 앞엔 '절대적'이라는 형용사가 생략되어 있다. 적대를 절대적으로 거두어들임으로써, 친밀해질 가능성을 절대적으로 열어둠으로써 성립되는 환대. 절대적 환대는 그 말이 불러일으키는 느낌, 다름 아닌 나의 사적인 공간을 내어주고 내가 소유한 것들을 무조건적으로 베풀어야 한다는 헌신적 증여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절대적 환대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순조롭게 안착할 수 있었던 까닭을 기억해내는 것이고, 그와 동시에 눈앞의 타인 역시 이 세상 속 그이 자리에 평온하게 앉을 수 있는 '절대적인'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상ㅅ기하는 것이라고. 절대적 환대는 세 가지 조건에서 이루어져 있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일 것, '보답을 바라지 않는 환대'일 것, 마지막으로 '복수하지 않는 환대'일 것. -p119.
우리가 고향을 잃을 때 진정으로 잃는 건 그 땅이 아니라 고향에 있는 그 사람이다. p175
나는 다만 내가 되어야 한다. <창작에 대하여> 가오싱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