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 겉표지가 참 예쁘다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원고지였구나.
부쩍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진 요즘, 은유작가, 고수리 작가의 글쓰기 관련 책을 함께 읽은 <둘이서 북클럽> 친구 A가 소개해주어 읽은 책.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마음에 드는 구절, 간직하고 싶은 구절에 작은 포스트 잇을 붙이니 옆이 가득 찼다.
이슬아 작가의 책이 좋아서, 사 모았던 때가 있었는데 그 때 이 책도 사두고 읽지는 않고 두었던 책인데 친구에게서 이 책 제목이 나오는 순간 바로 꺼내 들었다.
의외로 부지런한 사랑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의 글, 아이들의 말.
아이들과 함께 글방에서 지낸 시간, 글쓰기 선생님으로 지내면서 겪었던 경험을 엮은 책.
작가의 따뜻하고 다정하지만 군더더기 없고 과하지 않은,
그대로 바라봐 줄 줄 알면서 필요한 이야기를 적당히 잘 얹어가며 지도하는 모습이 정말 멋졌다.
무엇보다 그 순간을 포착하는 말과 글.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어떻다는 것을 아는 나이기에, 이렇게 순간을 포착하고 기록하는 것이 여간 정성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아는데.. 정말이지 대단하다.
좋은 글귀를 모아두고 싶은데 이렇게 모아두어도 괜찮은 건지.. 부디 내가 모아둔 글귀들을 보고 직접 책을 사서 보는 분들이 늘기를 바라며 채집한 문장들, 표현들을 풀어본다.
이야기란 우리를 몇 번이고 다시 살게 할 수 있었다. 다른 세계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어볼 수도 있고, 현실에서는 엄두도 안 날 스릴을 잠깐 체험해볼 수도 있고, 가짜로 비극을 겪으며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도 있었다. 그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더 강해지기도 했다. 선생님이라 불렸지만 교실에서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은 나였다. -p.16
그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쉽사리 '친절하다' 라고 쓰지 않는다.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실에 충실한 문장을 연습한다.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 묘사를 훈련한다. 이러한 묘사만이 좋은 문장일 리는 없다. 모든 글쓰기에 적절한 훈련도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들의 연습 방식을 자주 떠올리며 글을 읽고 쓴다. 무언가를 게으르게 표현하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좋은 글은 독자가 이야기를 믿게 만든다. -p.18
이슬아 선생님께
선생님 제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내가 모르는 걸 가르쳐줘서 고마워. 몰랐던 이야기를 잔뜩 들려주고 써줘서 고마워. 어떤 건 내가 알 것 같은 이야기이기도 했어. 어떤 글에 피드백을 적기 위해서는 내 삶의 경험치를 총동원해야 했어. 그걸 다 동원해도 모르겠는 이야기도 있었어. 더 잘살아야 할 것 같았어. 계속 글쓰기 교사가 되려면 정말 그래야 할 것 같았어. -p.45
10대들 앞에 글쓰기 교사로 서는 건 마음 놓아도 되는 어른이 되는 연습 같다. 아이들이 비밀과 죄책감을 쌓으며 어른이 되어갈 때 정서적으로 비빌 언덕 중 하나 일 수 있도록 말이다. -p.47
-물론 지금은 아주 가갑께 지내는 친구지만 그때 상철이는 나와 다른 마음일 수도 있다는 걸 잊지 않는다.
나사는 아는 듯하다. 관계가 회복되어도 때로는 상처 부위가 아주 말끔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상대방이 "나와 다른 마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그의 문장을 잊지 않고 싶다. -p.67
하지만 이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가 노는 와중에도 엄마의 혼잣말을 죄다 적었다는 점이다. 일하고 살림하고 이사라는 거사를 치러내는 한 어른의 흔적이 아이의 글에 적혀 있다. 글쓰기 수업에서 문득 떠올렸을 것이다. '그때 엄마가 뭐라고 했더라?' 하며 엄마의 대사를 되살렸을 것이다. 틀리게 옮기지 않으려 과거를 유심히 돌아봤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작업이 글쓰기의 가장 좋은 점일지도 모르겠다. 무심코 지나친 남의 혼잣말조차도 다시 기억하는 것. 나 아닌 사람의 고민도 새삼 곱씹는 것. 아이들이 주어를 타인으로 늘려나가며 잠깐씩 확장되고 연결되는 모습을 수업에서 목격하곤 한다. -p.72
글쓰기는 대부분 그런 순간에 시작되는 것 같아. 하고 싶었는데 못한 말들로부터. 혹은 안 했으면 좋았을 텐데 괜히 내뱉은 말들로부터. p.91
평범해 보이는 문장들이 적절한 배열로 배치되었을 때 얼마나 특별한 한 문단이 되는지를 유나 글에서 배워. p.115
각자 타고난 얼굴이 있긴 하지만, 어떤 작가들을 흡수하느냐에 따라 시시때때로 변하기도 한다. p.136
장뤼크 고다르
문제는 어디서 가져오느냐가 아니라, 어디로 가져가느냐다.
라캉
만일 슬픔이 우리의 '감정'에 진실한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은 '감동'의 카타르시스가 아닌 '흔들림'을 통해서일 뿐이다.
교사는 자기가 가진 정보를 신중하게 선별해서 말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생각나는 것을 죄다 말하지 않는 윤리에 대해 생각해쑈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신중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p.153
글쓰기는 사랑하는 것들을 '불멸화'하려는 시도다. p.171
파도는 그리움을 설명하는 대신 그리운 이미지를 그저 보여주었다. 좋은 문장은 글자만으로도 무궁무진한 이미지를 독자의 마음속에 그려낸다. 디테일한 묘사란 '부디 이렇게 상상해달라'는 요청과도 같다. 문장 속 디테일과 함께 우리는 과거와 미래로 드나든다. 다른 이를 나처럼 느끼기도 하고, 나를 새롭게 다시 보기도 한다. p.173
쉼보르스카는 말했다. 자기가 쓰는 시의 유일한 자양분은 그리움이라고. 그리하여 돌아가야만 한다. 그리워하려면 멀리 있어야 하니까. 그렇다면 작가는 어떤 일이 멀어지는 걸 보며 계속 살아가는 사람 아닐까. 멀어지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을 기록하며. 그리움을 그리움으로 두며, 하지만 결코 디테일을 잊지 않으며 말이다. -p.173
은선생님은 길고도 구체적인 피드백을 주었지만, 일기장 바깥 세계에서 일기 속 얘기를 언급하는 법은 결코 없었다. 그는 어떤 어른보다 나를 구체적으로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주었다. 그가 알아주는 동시에 몰라주었던 아이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아이들의 일기장을 유심히 읽은 뒤 말을 아끼는 선생님이었다. 그의 눈에 비친 교실의 모습은 아주 복잡했을 것이다. 실제로 드러나는 모습과 일기장에만 쓰이는 모습을 모두 조합하여 새로운 관계도를 그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아이들 각자의 비밀은 선생님과 자신 사이에서 글자로만 살아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온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내 인생'이라는 말도 그해 처음 적어보았다. -p.196
나는 알게 되었다. 작가의 글은 일기 이상이어야 한다는 걸. 여기에서 '일기 이상'이란 자신 이외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쓰는 글이다. 언제나 내 편을 드는 나를 제외하고, 내 말에 웬만하면 맞장구칠 준비가 된 독자도 제외하고, 불특정 다수가 읽어도 설득이 되는 문장을 향해 노를 저어 가야했다. -p.199
솔직함과 글의 완성도는 상관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솔직하지만 별로인 문장들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다. 내 일기장에서 쉽게 찾을 법한 문장들이었다. 어떤 솔직함은 끔찍했다. 비린내 나는 솔직함도 있었다. 솔직함을 최대 장점으로 내세우는 글에 관심이 없어지고 말았다. 솔직한 게 어려워서가 아니라 지루해서였다. 위험하기도 했다. 모두가 서로의 마음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더 지옥같을 게 분명했다. p.199
스물세 살에 글쓰기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뭘 가르쳐야 할지는 몰랐지만 한 가지는 알 것 같았다. 첫번째 사명은 '궁금해하기'였다. 나를 찾아온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호기심이 교사의 자격을 겨우 부여했다. -p.200
합평
여기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하나 있었다. 자기 글에 관한 의견을 받을 차례가 오면 글쓴이는 입을 닫는 것이다. 작가가 글을 따라다니며 첨언할 수는 없다고 어딘은 말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도 우리들의 글에서는 언제나 부족한 점이 발견되었다. 가끔은 자신도 아직 못하는 걸 서로에게 요구하며 합평했다. 우리보다 훨씬 좋ㅇ느 작가를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우정은 질투와 감탄과 존경을 원동력 삼아 게속되었다. 어떤 글쓴이는 합평자의 말을 끊고 입을 열기도 했다. 말이 아니라 글로써 진작 잘 드러내야 했던 이야기라는 걸 스스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해명을 위한 발언권을 충분히 내어주지 않는 건 적어도 이곳에선 글에 대한 존중이었다. 서로를 판단하는 근거가 글이기 때문이다. -p.205
이 상상은 나의 몫이다. 내가 슬플 공간을 작가가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쓰더라도 작가가 먼저 울어서는 안 된다고 나의 글쓰기 스승은 말하곤 했다.
그 연습을 계속한 사람들은 자신을 지나치게 불쌍히 여기거나 지나치게 어여삐 여기지 않는 채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자기 연민의 늪과 자기애의 늪 중 어느 곳에도 빠지지 않고 이야기를 완성하여 독자와 관객에게 슬픔과 재미를 준다. 혹은 두 가지를 동시에 준다. 자신 말고 타인이 울고 웃을 자리를 남긴다. 그것은 사람들을 이야기로 초대하는 예술이다. 더 잘 초대하기 위해, 더 잘 연결되기 위해 작가들은 자기 이야기를 여러 번 다르게 말해보고 써본다. 먼저 울거나 웃지 않을 수 있게 될 때까지. p.210
줌파 라히리, 김혜리, 은유, 메리 올리버, 사노 요코, 토니 모리슨, 아룬다티 로이
서영이와 지율이의 글에서 부모들은 현관문에 서 있다. 그곳은 수없이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장소다. 맞이와 배웅, 염려와 안도가 반복되는 장소라 어떤 말들은 아무리 되풀이해도 모자라다. 다녀올게. 잘 다녀와. 다녀왔어. 어서 와. 보고 싶었어... 글쓰기 수업에서 아이들은 이 평범한 대사들을 귀하게 여기며 원고지로 데려온다. 또한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생각해본다. P.271
내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들은 마당으로 뛰쳐나간다. 서로를 쫓아가며 웃고 떠들고 뛴다. 엄마나 아빠는 안중에 없어지고 순식간에 새로운 일로 즐거워진다. 동시에 내 책상에는 아이들이 타인을 생각하며 쓴 삐뚤빼뚤한 글자들이 쌓여 있다. 잠시나마 나의 고달픔 말고 다른 이의 고달픔으로 시선을 옮겼던 흔적이다. 나는 그 흔적이 자아의 이동 혹은 자아의 해방임을 안다. 시선을 이동하며 나에게서 해방되는 축복을 계속해서 가르치고 싶다고 소망한다. -P.274
상대방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싶은 마음과 내 몫의 라면을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고 싶은 마음은 공존할 수 있다. 인간은 양가적이고 복잡한 존재다. 모두들 여러 갈래로 동시에 뻗어나가는 욕망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중일 것이다. -P.276
"그 사람은 날 너무 잘 알고 넘치는 사랑을 준다. 하지만 때로는 깊은 상처를 남기며 날 지옥에 던져놓는다"-being alive
사랑은 천국과 지옥을 예기치 못하게 넘나드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나를 살아가게도 하고 헷갈리게도 하며, 날 가지고 노는 동시에 내가 이겨나가도록 도와준다.
동시에 성립되지 않을 것 같은 두 가지는 사실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심지어 충돌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것이 사랑의 복합성이라고 느낀다. 이 동시다발적인 복잡함에 대해 말하는 것이 문학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예술들은 모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그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그 사랑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p.278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책후기 #독서일기 #북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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